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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심정지로 길에서 쓰러져 우연히 응급의학과 의사를 만날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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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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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심정지 환자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오십 대 후반의 남성이 계단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목격자가 신고했고 구급 대원이 출동해 심정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현장 처치는 성공적이었다. 구급대는 유선상으로 심박을 확보한 채 응급실로 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행히 한 차례 위기는 넘긴 셈이었다.


환자는 곧 도착했다. 환자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현장에서 에피네프린을 투여했고 부정맥이 있었으나 제세동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환자를 살폈다.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나 맥은 안정적이었다. 순간 오른쪽 목 부근의 말초 정맥에 주사관이 확보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확보가 정말 어려운 자리였다. 현장에서 에피네프린을 투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생존율을 높이지만, 사지의 혈관 확보가 여의치 않으면 그대로 이송해도 무방했다. 숙련된 구급 대원이 집념 있게 환자를 살려낸 것으로 보였다. 환자에게는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신속하게 기본적인 처치와 검사를 진행했다. 심정지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추정되었다. 혈관 조영술을 준비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를 받더니 나를 불렀다. “K 선생님인데요.” 나는 순간적으로 의아했다. K는 이 응급실에서 4년간 응급의학 수련을 마치고 재작년에 전문의를 취득한 후배였다. 그는 현재 다른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왜 중환 구역에 직접 전화를 했을까.


“여보세요.”


“네. 접니다. 오랜만입니다. 지금 눈앞에 계신 환자 제가 봤습니다. 도로변 현장에서 팔 분간 네 사이클 심폐소생술 이후 심박 회복되었습니다. 무맥성 심실세동이 두 차례 발생해서 제세동기를 적용했습니다. 기도는 확보했지만 초기에 사지 말초 혈관 확보 실패해서 급한 대로 목 부근의 혈관으로 에피네프린을 두 차례 사용했습니다. 자발 순환 회복을 확인하고 이송 지시했습니다.”


나는 상황 판단이 조금 덜 되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가 막혔다.


“그런데, 병원도 아니고, 환자를 길에서 만났나?”


“네. 길을 가는데 저 멀리서 구급 대원이 막 도착해 분주하길래, 가보니까 심정지 환자던데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그걸 어떻게 지나칩니까.”


그러니까 이 처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행한 것이었다. 그것도 근방의 의료 체계가 익숙하고 담당 의료진도 알고 있는 전문의가. 알고 보니 바로 뛰어가서 신원을 밝히고 형식상 구급지도 아래 모든 처치를 지휘했다고 했다. 심지어 이송할 때 명함도 건넸다. 이송 중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하라고. 우리는 모두 K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성실하고 활발한 의사라 그런 상황을 보고 지나칠 사람은 아니었다. “K 선생님이 또 한 건 했네.” 우리는 안도감과 대견함을 담아 말했다. 환자는 조금씩 깨어나고 있었다. 심장 스텐트 삽입만 잘 되면 안정적으로 살아나 이전과 같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중환자실로 올라가고 생각했다. 과연 심정지가 발생해서 길에 쓰러졌는데 우연히 응급의학과 의사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는 걸까. 응급의학과 의사인 나도 심정지 이후에는 의식 없는 몸뚱이만 남을 뿐이다. 나 또한 병원 밖에서 심정지로 쓰러지면 응급의학과 의사를 우연히 조우할 확률은 남들과 같다. 나는 평생 동료 응급의학과 의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은 없으며, 평생 길을 걷다가 심정지 환자를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이 확률은 얼마나 희박한 걸까. 누군가는 운이 좋아 돈을 벌고 누군가는 유명해지지만 누군가는 하나뿐인 목숨을 건진다. 막 중환자실 간호 기록에 그의 의식이 회복되었다고 했다. 불행이라면 만사를 수집하는 응급실이지만 가끔 어떤 경우보다도 존귀한 행운이 있다. 생사가 결정되는 순간은 늘 어둡고 무겁지만, 이렇게 빛나는 단면도 있는 법이다.




글·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