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건강이야기

과로사 예방을 위한 혈압관리의 첫 걸음
파일
  • 파일이 없습니다.
  • 등록일 2022-01-04

external_image



50대 남자가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진찰실 문을 열었다. 사업주가 실시하는 유해 작업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러 왔다. 수검자가 작성한 근무환경 평가지를 살펴보았다. 특수건강진단을 할 때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문진을 위해 자체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 한 문진표이다. 화학물질 노출은 거의 없다고 적혀 있었다. 몇 가지 화학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은 있지만 팀의 리더이기 때문에 직접 현장 업무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근무시간을 일주일에 52∼59시간이라고 표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법정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지위가 높을수록 실 근로시간이 긴 경우는 흔한 일이다. 집에 회사 일을 가지고 가서 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런 경우 장시간 노동은 뇌졸중과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계질환의 직업적 위험요인이라는 점을 주목하여 문진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러한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과로사라고 부르고, 이는 일본어 발음 그대로 ‘Karoshi’라고 영어 단어로 등재도 되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 과로사 상담센터 활동을 통해 그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국내 산재보상신청을 하는 직업성 질병 가운데 사망률이 가장 높은 질환으로 예방대책이 절실한 문제이다.


혈압이 높았다. 지금까지 건강검진에서 측정한 혈압을 기억하는 지 물었다. ”최고 혈압은 140이고, 밑에 혈압은 모르겠는데요.“ 자주 듣는 답변이다. 건강검진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재지만 그 수치는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은 한국인의 주요 사망원인인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의 핵심 위험요인이기 때문에 정상 혈압범위와 자신의 혈압수치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상 혈압은 수축기혈압이 120mmHg 미만이면서 이완기혈압이 80mmHg미만이다(이하 단위생략). 수축기혈압은 심장이 펌프질을 해서 혈액을 온 몸으로 내보낼 때의 혈압, 이완기혈압은 혈액을 심장으로 모을 때의 혈압이라고 보면 된다. 두 가지 수치를 모두 알아야 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라도 높으면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잘 모르는 수검자들은 흔히 수축기혈압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고혈압은 수축기혈압이 140 또는 이완기혈압이 90을 넘는 경우를 말한다. 혈압은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한 번 측정해서 판단하지 않고 각각 다른 날 두 번 이상 고혈압 기준에 해당해야 고혈압이라고 진단한다.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으면 먼저 측정 30분 전에 커피나 담배, 급격한 신체활동 등을 하지 않고 5분 이상 충분히 안정을 취하고 제대로 측정했는지를 확인한다. 어려운 일이다. 직원들을 아무리 교육해도 수검자들이 협조하지 않을 때도 있고, 수검자들이 많을 때 직원들이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혈압을 제대로 재고, 수치를 제대로 알자."내가 진료실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 설명하는 말이다.


혈압측정이 적정했는데 그 수치가 140/90이상이면 혈압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이틀 이내에 과음을 하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등. 간혹 건강검진만 받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혈압이 높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충분한 휴식 후에 회사의 건강관리실, 헬스클럽, 약국, 공공기관 등등에서 여러 번 혈압을 재보고 적으라고 권한다. 그 결과가 계속 140/90을 초과하면 내과에 가서 상담하도록 권한다.


앞서 말한 수검자의 경우는 150/100이었다. 약물치료를 고려해야 하는 기준인 최고혈압 160 또는 최저혈압 100을 초과하는 수치이다. 과거 검진기록을 보았다. 재작년에는 130/85이었는데, 작년에는 140/90이었다. 고혈압의 가족력도 있었다. 다행히 뇌심혈관계질환의 다른 위험요인은 적었다. 비만은 없었고, 과거 혈액검사결과 혈당은 정상, 혈중 지질은 약간 높았다.


본인의 혈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걱정된다" 했다. 안 그래도 몇 달 전부터 가끔씩 뒷목이 뻐근하고 친구들이 건강이 나빠져서 하나, 둘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도 보고 듣고 나서 부인과 의논을 했다고 한다.


’아, 그럼 투약을 권고하면 잘 이해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듣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안타까운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보험을 들었다”는 것이다. 본인의 건강은 뒷전이고 혹시라도 잘못되면 가족의 생계를 챙기기 위해 보험을 들었다는 답변. 건강검진하면서,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서 가끔 듣는 이야기이다. 내가 그 때 하려고 했던 말은 흡연, 운동부족, 장시간 노동과 같은 개인적, 직업적 위험요인을 줄이고, 투약을 위해 의원을 방문하라는 것이다.


걱정은 하면서도 혈압관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한다. 회사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집에서도 사춘기 자녀와 이런저런 갈등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잊고, 기계처럼 일하게 된다. 나 역시 이런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더 젊었던 시절에 과로 관련 건강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렇게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무거운 책임을 느끼면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혈압이 높은데 건강관리를 할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중년 남성들은 본인들이 ‘과로사 고위험군’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논문들이 ‘죽도록 일하면 정말 일찍 죽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나를 돌보는 일을 가장 중시해야 소중한 가족도, 일도 지킬 수 있다. 과로사 예방을 위한 혈압 관리를 위한 첫걸음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결심을 하는 것이다.


external_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