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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주웅 교수의 癌전무퇴] 사회 암적 존재와의 전쟁, 몸속 암과의 싸움과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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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4-10-10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란 ‘적폐(積弊)’라는 단어가 언론 매체에서 자주 눈에 띈다.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에서 적폐에 해당하는 것을 손꼽는다면 몸에 조금씩 불어나는 지방이나 셀룰라이트, 혈관벽에 쌓여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죽종(粥腫ㆍatheroma) 같은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만성적으로 쌓이고 쌓여 결국 인체의 정상 기능을 가로막는, 없어져야 할 문제들이니 ‘적폐’라는 용어의 본뜻과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이는 사회적 용어를 건강에 가져다 붙여 본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인체의 질병을 사회 병리에 가져다 붙인 사례가 바로 ‘암적(癌的) 존재’라는 관용어이다. 적폐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연한 사회적 해악으로 누구나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섬멸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회의 ‘암적 존재’라는 말은 짧은 기간에 숙주의 건강을 파멸시키고 잘 뿌리 뽑히지 않는 암(癌ㆍCancer)과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대표적인 암적 존재로 치부되는 조직폭력배, 이른바 조폭의 행동 양식을 보면 암세포의 자연사(自然史)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암세포는 정상세포의 돌연변이로 생긴다. 날 때부터 범죄자 아니듯 선량한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조폭이나 범죄자가 되는데, 이들의 특징은 통상적인 사회규범이나 법적인 제어장치로 행동이 잘 규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포 주기가 자율 통제를 벗어나 불멸화 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암 세포는 주변에 침윤하고 전이하는 특징이 있다. 다른 사람의 권익을 탈취하고 세력이 커질수록 영역을 넓혀나가는 조폭과 같은 모습이다.

암을 치료하는 방법으로는 수술ㆍ항암요법 등이 있는데, 칼을 써서 암 조직을 통째로 제거하는 모습은 기동타격대가 일시에 조직을 습격하여 전조직원을 일망타진하는 모습과 유사하고, 일시에 습격하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검문하고 단속하여 활동을 점차 위축시키며 서서히 섬멸해 가는 과정은 항암제를 이용한 약물치료와 비슷하다. 근치(根治)적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암이 재발하듯이 조직을 완전히 뿌리뽑지 않으면 조폭은 재건된다. 특히 세포들 중에서 중심이 되어 다른 암 세포들을 생산해 내는 줄기세포와 같은 보스를 제거하지 않으면 조직 소탕작전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수술 기술과 치료약이 좋아지면 거기에 맞춰 암 세포도 진화한다. 항암제를 이겨내는 항암제 내성 세포주가 생기게 되는데 조폭이 지능ㆍ기업화 되어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새로 개발된 항암제는 진화된 암 세포의 약점을 찾듯 수사기법도 탈세나 금융범죄 쪽으로 확장된다. 특히 조폭의 돈줄을 죄어 압박하는 방법은 암 세포에 영양공급이 되는 혈관 생성을 억제한다는 표적 치료제의 작용 메커니즘과 다를 바 없다.

행동양식과 자연사가 빼 닮은 암과 암적 존재, 이들과의 전쟁은 길어지기도 쉽고 그 과정에서 지치기도 쉽다. 이것이 바로 투병하는 암 환자들에게 주변의 관심과 꾸준한 격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주웅 이대여성암병원 부인종양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