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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심봉석 교수의 재미있는 비뇨기과 상식] “고래 좀 잡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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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0-06-18

 

[심봉석 교수의 재미있는 비뇨기과 상식] “고래 좀 잡아줘”

 

글·심봉석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가벼운 배뇨증상으로 가끔씩 찾아오던 60대 중반의 진경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오셔서 대뜸 하신 말씀이다.

 

“고래도 잡으셔야겠는데요······.”

소변보는 불편함을 수년간 참고 지내다가 찾아오신 70대 초반의 문식 할아버지께 검사 결과 전립선비대증을 치료해야 한다고 하면서 함께 드린 말씀이다.

 

먼저 고래를 잡아달라고 하신 진경 할아버지는 진찰 결과 특별히 필요치 않은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막무가내로 해달라고 우기다가 마침내 그 이유를 말씀하셨다. 얼마 전부터 정력과 발기력이 감퇴됐는데 친구들에게서 포경수술을 하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신 것이다.

 

배뇨장애가 심한 문식 할아버지는 진찰하는 도중 귀두에 포피가 심하게 달라붙어 있어 요도 입구가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전립선비대증도 치료를 받아야했지만 그 이전에 포경수술로 포피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70대 할아버지께 포경수술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해 대신 예전의 비유를 썼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된 ‘고래사냥’이라는 노래는 청바지, 통기타와 더불어 70년대 젊음의 상징이었다. 영화에서는 희망을 찾아가는 것을 ‘고래사냥’으로 표현했지만 ‘고래사냥’은 ‘고래 잡는다’는 말로 바뀌어 ‘포경수술’의 의미로 널리 사용돼 왔다.

 

하지만 두 단어는 음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의미다. 포경(包莖)은 ‘남자의 음경(莖)이 피부에 덮여있다(包)’는 뜻으로 포경수술은 덮여있는 음경피부, 즉 포경을 제거하는 수술을 말한다. 반면 포경(捕鯨)은 ‘고래(鯨)를 잡는다(捕)’는 뜻이다.

 

포경에는 귀두를 덮고 있는 포피를 당겼을 때 자연스럽게 뒤쪽으로 벗겨지는 불완전포경(가성포경)과 포피의 앞쪽이 심하게 좁혀져서 뒤로 젖혀지지 않고 감염이나 협착 등의 합병증을 초래하는 완전포경(진성포경)이 있다. 포경수술은 음경에 과도하게 덮여있는 포피를 한 바퀴 돌아가면서 제거하는 수술로 정확한 의학용어는 ‘환상절제술(circumcision)’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술 중 하나인 포경수술은 유대교와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교의식으로 행해졌다. 미국에서는 1900년대 중반 청소년의 자위행위를 막고 성병과 요로감염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널리 성행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미국의 영향으로 도입됐으며 사춘기 통과의례처럼 ‘다른 친구들이 다 하니까’ 시행빈도가 높은 편이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포경수술이 반드시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논란은 주로 의학적 견지에서인데 포경수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포피를 제거하면 밖으로 드러나는 부위가 각질화 되고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포경으로 인한 위생문제도 목욕이 일상화돼 구태여 필요치 않다고 한다.

 

이에 반해 포경수술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귀두와 포피 사이에 때가 끼고 염증이 생길 수 있으며 수술할 경우 성기능이 좋아지고 최근 에이즈가 예방된다는 연구도 있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 포경수술 후 각질화나 성기능장애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고 포경수술이 성기능을 강화하거나 조루를 개선시키지도 않는다. 또 포경수술을 할 정도라면 성생활 관리도 잘 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포경수술만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 즉 에이즈나 성병은 포경수술 여부보다 개인의 생활태도에 좌우된다.

 

완전포경으로 염증이 자주 재발하거나 소변보기가 불편한 경우는 의학적으로 포경수술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불필요한 수술이다’라는 의학적 관점만을 따지는 것은 ‘쌍꺼풀수술이 의학적으로 이점이 있느냐 없느냐, 해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차피 남아도는 피부를 잘라내기는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왜 쓸데없이 귀두를 감싸는 포피가 존재하는 것일까? 성기의 끝 부분인 귀두를 피부가 감싸고 있는 이유는 귀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항상 발가벗고 다녔던 원시시대에는 종족보존에 필수적인 음경, 특히 귀두를 보호하기 위해 여분의 피부로 덮여 있었다.

 

일부 동물은 평소 몸속에 음경을 집어넣고 있다가 사용할 때만 밖으로 내밀기도 하지만 사람의 경우 그런 기능 대신 포피로 보호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인류가 옷을 입기 시작하고부터는 귀두를 따로 보호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위에서 열거한 여러 이유들로 포경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포경수술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의학적 판단보다는 정서적·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본인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수술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깨끗하게 관리할 자신이 있고 모양이 마음에 들면 굳이 수술 받을 필요가 없고 그렇지 않다면 간단하게 수술 받으면 된다.

 

포경수술의 시기에 대한 근거도 명확하지 않다. 구태여 의학적인 문제가 없다면 시기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포경수술도 하나의 경향이고 시대적인 흐름일 수 있으나 친구가 한다고, ‘엄친아’가 한다고 무작정 따라하지는 말자.

 

진경 할아버지는 포경수술 대신 호르몬치료를, 문식 할아버지는 포경수술을 받으셨고 지금은 두 분 다 만족해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