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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안녕하세요 응급실입니다]아이의 입장에서…학대 의심되면 무조건 신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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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6-21

환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응급실에 찾아온다. 각자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그 사연을 연속적으로 마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온갖 사회의 단면을 마주한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는 ‘아픈’ 사람들이지만, 그 사연의 이면에서 가끔은 상상하기 힘든 사고나 범죄에 휘말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응급의학과 의사는 잔인한 장면에 익숙할뿐더러 범죄자나 살인범까지도 목격하게 된다. 그중 필자가 가장 최악으로 꼽는 범죄는 단연 아동학대다.


잠깐 생각해보자.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대부분이 부모이거나 양육자다. 그 양육자가 직접 아이를 폭행하거나 위해를 가하다가 갑자기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응급실로 올까? 가끔은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 피해자가 응급실에 오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가끔 끔찍한 학대를 당한 아이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가 키우는 아이가 있었다. 지적장애가 상당히 중증이라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사회에서 혼자 살아남지 못할 정도였다. 이 엄마에겐 사실혼 관계의 남편이 있었고, 아이가 하나 있었다. 남편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뒤 생후 2개월까지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하지만 이 남편은 물론이고, 엄마도 응급실에 아이를 데려올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가정을 방문해 도움을 주던 교회 사람들이 집에 찾아갔다가 아이 상태가 나빠 보여 같이 내원했다. 2개월 된 아이는 숨 쉬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즉시 정밀검사를 시행했다. 다발성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이 있었고, 사지의 뼈가 전부 부러져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TV를 보다가 리모컨으로 아이 머리를 때렸다는 정도만 간신히 진술할 수 있었다. 아이는 살아남아 부모와 격리된 채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영원히 장애가 남았다.


얼마 전에 기사화되었던 ‘괴물 위탁모’ 사건도 응급실에 내원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새벽에 15개월 된 아이가 응급실로 왔다. 탈수가 심했고 뇌출혈도 있었다. 당시 어머니라고 주장했던 사람과 같이 왔다. 양육의 고단함을 토로하며 아이를 걱정해서 우리는 그 어머니를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찰에 아동학대를 신고했다. 아이가 이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학대의 범주에 든다는 생각이었다. 그 신고가 ‘괴물 위탁모’ 사건의 시작이었다. 어머니라고 주장했던 사람은 5명의 아이를 돌보던 직업적 위탁모였으며,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육체적 학대를 가했고, 심지어 그 장면을 촬영해 남겨놓기도 했다. 장염에 걸렸으나 기저귀값이 아깝다는 이유로 굶어야 했던 15개월 된 아이는 끝내 죽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조사 중이다.


아동학대를 최악의 범죄로 꼽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폭행한다는 끔찍한 사실뿐만이 아니라, 반항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가하는 저열한 폭행이며, 장차 아이에게 남은 긴 인생마저도 파괴하는 횡포함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한 번의 폭행이라도 당하면 응급실로 곧장 온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죽어갈 때까지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심지어 영영 그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이런 현장에서 보았던 참혹함 때문이다.


2017년에 아동학대로 46명이 죽었다. 그중 41명의 아이는 죽은 다음에서야 신고가 되어 알려졌다. 그 전에도 학대가 있었겠지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였기에 죽고 나서야 알려진 셈이다. 의료인도 신고의 의무를 포함한 모든 책무를 다해야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심되는 경우 무조건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다. 모든 초점을 어른이 아니라 온전히 아이 입장에 맞춰야 한다. 신고 전화는 무조건 112다.


당신이 인생에서 한 명의 아이만 구해내도, 나는 당신 인생에 경의를 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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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