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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반복되는 죽음의 외주화, 김용균 특조위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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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9-18


발전소 산재 원인, 핵심은 원·하청 차별 구조

5월 어느 오후, 나는 당진 발전소에 있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안전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실제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땀에 범벅이 된 방진복을 벗고 탄가루 묻은 얼굴을 닦고 났을 때,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 특조위가 진행 중인 노동안전실태 설문조사를 방해하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설문지 입력 업체를 방문했다. 어느 발전소는 설문지를 봉인한 대봉투가 뜯겨진 채로 보냈다. 모범답안을 미리 표시해놓고 응답한 설문지들도 발견되었다. 대리 응답의 흔적도 있었다. 설문 오염이 의심되는 사업장의 설문응답률은 95% 이상으로 기이하게 높았다.


특조위는 긴 토론 끝에 이 설문지들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익명성을 보장하고 설문지 유출을 막기 위해 전국 동시다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13명의 특조위원이 작업장을 순회하면서 설문조사를 독려했다. 그렇게 해서 1만31명의 소중한 응답을 얻었다. 응답률 74%. 조사결과를 일반화하는 데 무리가 없는 수치였다.


통계분석을 시작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지난 1년간 작업관련 사고 및 중독으로 손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은 발전회사에서 1000명당 4.5명인 데 반해 발전소의 청소, 보안, 시설관리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는 31.3명, 연료환경운전 및 정비업체와 같은 하청업체는 39.1명이었다. 연료환경운전업체는 고 김용균이 했던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이다. 믿을 수 없는 수치였기에 여러 번 반복해서 분석했으나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러한 차이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원·하청 구조가 작업관련 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서 기인한다. 알려진 것처럼 하청 노동자는 원청 노동자보다 추락·전도·충돌 등 더 불안전한 작업환경에 노출되고, 이는 작업관련 손상 횟수를 증가시킨다. 특조위의 심층 분석 결과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가 한 명 더 늘어날 때마다 연간 작업관련 손상 횟수가 0.75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발생의 위험요인으로 잘 알려진 안전정보 제공 미흡, 짧은 근무기간,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역시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관련 손상 경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주목할 만한 결과는 타사 관리자의 작업지시를 받는 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의 작업관련 손상 발생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업장보다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상의 결과는 ‘위험의 외주화’를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일각에서는 외주화 자체를 중단하는 것보다 원청과 하청 사업주에게 안전책임을 분명하게 규명해서 외주화된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특조위 설문조사 분석 결과가 증명하는 것은 단순히 위험이 외주화되어 하청 노동자의 산재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아니다. 원·하청 구조 자체가 발전소의 산재 위험을 증폭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이들은 고 김용균이 일했던 연료환경운전업체만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조사 결과에서 자회사 역시 원청보다 작업관련 손상 치료 경험이 7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사고의 핵심원인인 불안전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원·하청 간의 평등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도급제도가 거의 신분제에 가까운 우리 사회에서 자회사가 설립되더라도 위험관리의 사각지대는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특조위의 결론은 최소한 전기 생산을 위해 일하는 모든 하청 노동자들을 공기업으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기생산의 흐름 공정에서 일하는 연료환경운전 노동자들을 발전사가 직접고용하고, 민간개방 이후 산재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정비업체들은 공기업인 한전KPS로 재공영화하는 것이다.


지난 2일 특조위는 국무총리실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최종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행점검기구 설치를 촉구하는 공문을 전달했다. 이 역시 특조위 권고안의 하나이다. 다시는 제2의 김용균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부가 권고안을 어떻게 이행할지 함께 지켜보자.


글·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