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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세상에 없을 수도 있던 누군가가 새 삶을 살게 되는 순간들, 저에게는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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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1-05-26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료진, 환자, 보호자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내며 많은 이들을 웃고 울리며 의학 드라마의 신화를 썼다. 의학 드라마가 이렇게 열렬한 응원을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드라마의 성공 뒤에는 사실 많은 사람의 숨은 노력이 있겠지만 의학 드라마인 만큼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잘 살려준 의학자문 의사의 공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같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기까지, 자문을 통해다양한 에피소드를 제공해 준 간 이식 전문의 홍근 교수를 만나봤다. 


홍근 교수가 오랜 시간 쌓아 온 환자와의 교류, 그리고 세상을 보는 섬세한 시선 덕분에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의사생활이 한층 더 슬기롭고, 따뜻했고, 덕분에 우리는 참 행복했었다.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홍근 교수와 일문일답 시간을 가졌다.


올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자문을 맡으셨는데요. 이대서울병원에서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했구요. 어떤 계기로 자문을 맡게 됐나요?

벌써 한 4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드라마 작가가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다가 우리 병원에도 연락을 했죠. 그 당시 제가 이대목동병원으로 온 지 얼마 안 돼서 굉장히 열심히 뛰고 있었어요. 초창기라 환자 수가 많지 않으니 한 명 한 명 정말 신경을 많이 썼죠. 드라마에서 의사들이 굉장히 세심하게 나오는데, 사실 저의 실제 경험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저한테는 그게 현실이었죠. 환자의 경제적인 사정, 가족관계, 그런 걸 다 듣고 이 사람에게 최적의 치료 방법이 무엇일지 같이 고민했어요. 그렇게 제가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을 얘기해주니까 첫 미팅부터 작가들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자기들이 추구하는 드라마 방향하고 많이 맞는다고 생각했고, 주인공 중 하나가 간담췌 외과 의사이니 이식쪽 얘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면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에서 인간미 넘치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큰 화제가 됐었죠. 실제 교수님의 경험이 녹아든 에피소드는 어떤 건가요?  

작가들 사이에서는 제가 홍 작가라고 불리고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건 어린이날 에피소드에요. 펠로우 시절이었는데, 당시 있던 병원에서는 뇌사자 간 이식 수술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먼 곳에 있는 병원까지 적출하러 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저는 피곤하기 때문에 빨리 가서 빨리 끝내는 것만 생각했지요. 환자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누워 있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은 마침 어린이날이었고 저도 우리 아이와 함께 놀러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응급 콜이 왔고 장기를 구득하러 어느 병원에 가게 됐어요. 이미 병원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는데 수술시간이 자꾸 미뤄지는 거예요. 이유도 모르는 채 밤늦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하루종일 아빠를 기다렸을 우리 가족 을 생각하니 마음이 좀 상했죠. 결국 코디네이터한테 왜 수술 시작을 안 하는지 물어봤어요. 그 선생님 얘기가 기증자분에게 어린 자식이 있는데, 보호자인 아내가 꼭 열두 시를 넘겨서 수술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거예요. 어린이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그건 평생 남는 거잖아요. 매년 어린이날 아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할 거고요. 그 사정을 듣고 저 스스로 굉장히 진지해졌고, 미안했습니다. 마음속에 깊게 남아 있던 이 에피소드가 실제 드라마에서 는 의사가 먼저 제안하는 걸로 조금 바뀌었죠. 그때 그 순간, 모든 기증자가 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한 가족의 사랑받는 구성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죠. 그렇게 장기 적출을 하고 나오는데, 수술장 밖에서 울고 있는 보호자들이 그제야 보이더라고요. 이 경험이 저한테는 굉장히 큰 의미였고, 그 이후 기증자나 수혜자를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고 바빠서 잊고 살았었는데, 처음 의사가 되려고 했을 때의 마음, 즉 초심이 되살아나기도 했어요. 원래 사람 대하는 게 좋아서, 사람들하고 부대끼면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사를 선택했었거든요. 


그리고 수혜자가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했을 때, 의사가 기증자와 기증을 할 수 있게 동의해 준 보호자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도 드라마에 나왔었는데요. 이런 얘기도 작가들한테 많이 해주었지요.  


자문에 참여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걸 보면서는 어떠셨어요?  

이 드라마를 특히 의사들이 더 열광하면서 봤다고 알고 있어요. 현실 고증도 잘된 편이고 자기들이 수련받던 그 시절이 그대로 드라마에 나오니까요. 제가 환자들을 보면 서 느꼈던 걸 드라마에서 반영을 많이 해 준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의과대학 학생들 한테 강의할 때도 이 드라마를 꼭 한 번 보라고 해요. 제가 자문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의사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으로 환자들을 대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 드라마거든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기증자의 예우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오고, 환자들이 기증을 받아서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보여주잖아요. 내가 기증에 동의해주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된다는 걸 드라마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주니까, 보호자 분들의 결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이 드라마가 미친 가장 큰 영향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신 것 같은데,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요?  

저한테 간 이식 수술을 받고 결혼을 해서 출산까지 한 환자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드문 일이에요. 그 과정이 저한테는 굉장히 길었는데, 중간에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또 행복하기도 했죠.


환자가 어렸을 때 카사이 수술(Kasai, 선천성 담도폐쇄증 치료 수술)을 하고 잘 지내다가, 대학생때 간이 점점 안 좋아져서 결국 이식을 받은 건데요. 청첩장을 받고 결혼식장에 갔더니 어머니가 저를 보자마자 막 우시더라고요. 제 환자가 잘 성장해서 결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는데요. 그 환자에게 혹시 가족계획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있다고 해서 비상이 걸렸어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출산도 생각할 텐데, 보통은 합병증 때문에 출산 생각을 아예 못하고 지내거든요. 결국 산부인과 선생님과 협진을 통해서 출산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갔어요. 제 쌍둥이 딸이 태어날 때보다 더 노심초사했던 것 같아요. 환자 어머니가 딸 출산 후에 저를 찾아와서 옛날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처음 상담받으러 왔을 때 아픈 딸 때문에 평생 한이 맺혀있다고 하니까, 간 이식으로 해결된다면서 제가 그 한을 풀어드린다고 했대요. 저는 그렇게 말 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해 드린 거죠. 이래서 간 이식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간부전 환자는 이식을 안 하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분들이거든요. 그런데 이식이 잘 돼서 그분들이 건강하게 퇴원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이 의료행위가 스스로도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기기증으로 자기가 새 생명을 받게 돼서 너무 감사한데 보답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환자들도 많은데요. 제 환자 중에 어떤 분은 혹시나 뇌사가 되면 자기도 기증하고 싶다는 얘길 하셨어요. 이 분은 간 이식 받고 신장이 안 좋아져서 투석하며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날 뇌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오셨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보호자분들이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평소에 이 분 생각을 아셨으니까 결국 기증에 동의해주셨어요. 이식받은 간을 그대로 다른 분께 돌려드리고 가신 거죠. 


반대로 술 때문에 간이 안 좋아져서 뇌사자한테 이식을 받았는데, 수술 후에 건강해지니까 다시 술을 마시면 안 되냐고 묻는 분들도 가끔 계세요. 그럴 때마다 간을 기증하신 분을 생각해 달라, 술 때문에 또 간이 안 좋아진다면 그건 큰 죄라 말씀드리죠. 그 간을 만약 다른 분이 받으셨으면 건강하게 사실 수 있는 거였는데 그런 기회를 저버리게 되는 거잖아요. 안타깝죠.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때를 놓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들었는데요. 환자들에게 간 이식 관련 조언 부탁드립니다.

간 때문에 몸이 불편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이식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정보가 없으면 치료 시기를 놓칠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이식센터에 가서 상담을 해 보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시는 분도 많은데, 우리나라는 보험이 잘 돼 있어서 그런 걱정은 좀 덜하셔도 돼요. 이식받고 합병증 때문에 고생만 한다는 오해도 있는데요. 실제로는 거의 90% 정도가 좋아져요. 잘못된 소문 때문에 이식 상담 자체를 안 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앞으로 많은 분들이 이식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시고 새로운 삶을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천상 의사였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의사…. 

냉철하고 수술만 잘하는 의사가 아닌 ‘진짜’ 의사 말이다. 

그를 만나고 나오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