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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심봉석 교수의 재미있는 비뇨기과 상식] 화학적 거세, 과연 해법의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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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0-09-09



글·심봉석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쿠키 건강칼럼] 말쑥한 차림을 한 2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이 진료실로 들어섰다.

“잘라주세요······”
“예!? 무슨 얘기인지???”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이 일어나 공부에 방해가 돼서요······. ‘거세’해 주세요.”

올해 초 방영된 제중원이라는 드라마는 근대의료에 대해 다뤘는데 여기에 보면 주인공 황정(박용우 분)이 당시 내시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성병인 임질과 매독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드라마 제중원에서 보듯이 내시들이 문란한 성생활로 성병에 감염됐다는 내용은 실제 거세를 하더라도 성욕이나 성기능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의학적으로 멀쩡한 고환을 제거하는 유일한 경우는 섹스에 대한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전이된 전립선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고환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 전립선암의 진행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함인데 그 방법으로는 절개해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거세’와 약물로 고환의 테스토스테론 분비기능을 억제하는 ‘약물거세’가 있다.

이러한 항 남성호르몬요법의 부작용 중 하나가 성기능장애인데 이를 이용해 성범죄의 재발을 막자는 것이 화학적 거세다.

이번에 국회에서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됨으로써 2011년 7월부터는 “화학적 거세(去勢)”가 시행된다. 주목적은 아동성폭행 재발방지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상습 성폭력범죄자뿐 아니라 초범자도 거세대상자가 될 수 있고 대상범죄자의 연령은 만 19세 이상으로 정했다. 아동성범죄자들은 성충동의 해결이 어려워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화학적 거세를 통해 성범죄의 재발을 막는 제도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이 제도만으로 재발률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을까? 또 아동 성범죄가 단순히 성적 충동만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물론 거세를 통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정상 이하로 낮춤으로써 성욕감퇴를 유도해 성범죄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성인에서 고환이 제거되면 성욕감퇴는 나타나지만 성적 자극을 유발하는 비디오검사에서는 상당수 발기가 이뤄짐을 확인할 수 있어 거세가 성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방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아동성폭력’은 아동성도착증(pedophiles)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통 18세 이전에 발병하며 본인이 문제에 대해 인식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과는 달리 자기보다 약한 아동에게 ‘성’을 매개로 한 잔인한 폭력이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치유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소아성도착증을 가진 성범죄자에게는 화학적 거세보다는 정신의학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그렇다면 테스토스테론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의 라이디히세포(Leydig cell)에서 생산돼 일부는 고환에 남아 정자의 생성과 성숙에 작용하지만 대부분은 혈류로 분비돼 뇌를 비롯한 뼈, 근육, 혈액 등 신체 각 부위에서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효과를 나타낸다. 즉 단순히 성기능에만 작용하는 호르몬이 아니라 신체 유지에 필수적인 호르몬이다.

테스토스테론에 관한 잘못된 견해 중 하나는 테스토스테론이 남성의 폭력적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인데 의학연구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폭력적 행동과의 관계가 증명된 적이 없다.

따라서 성범죄자들이 단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극소수에서 남성호르몬이 성폭력과 관련이 있을 수는 있는데 이 극소수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의학적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이번 법안에 따르면 본인의 동의 없이 법원의 판결만으로도 집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화학적 거세로 인한 또 다른 부작용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부작용으로 여성형 유방, 얼굴 홍조, 피로감, 체중 증가, 골밀도 감소, 고지혈증, 당뇨병, 우울증 등이 있는데 전립선암의 치료적 목적이 아닌 징벌적 성격의 화학적 거세에서 과연 이러한 부작용까지 감수해야 할 것인가?

성행위 자체를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화학적 거세를 일방적으로 시행했을 때 당사자들은 반감으로 인해 더 폭력적이 될 수 있고 재범의 가능성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화학적 거세를 집행하기 전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비뇨기과 전문의들에 의한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며 정신치료와 심리상담이 함께 시행돼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는 대다수 국가에서는 범죄자를 설득해 동의를 구한 후 잘못된 성적 욕구를 치료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시행하고 있다.

아동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화학적 거세보다는 장기적인 정신심리치료와 철저한 감시가 재범방지에 훨씬 효과적이다. 일시적이고 감정적 대응보다는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정책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