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건강이야기

선진국이란?… 코로나19가 던진 질문
파일
  • 파일이 없습니다.
  • 조회수 207
  • 등록일 2020-06-10

external_image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을 때 나는 중국에 체류 중이었다. 우한과 멀리 떨어진 신장위구르자치구였다. 바이러스에 대한 소식은 천천히 들려오다가 갑자기 중국 전역을 장악했다. 의사로서도 시민으로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신장자치구는 소수민족 비율이 높아 이미 당국이 집중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미 갖춰 놓은 시스템에 전면적 방역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가혹했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했다. 아직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았던 때였지만, 초기에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가 시행되는 느낌이었다. 개개인의 접촉을 방지하는 개념에서 나아간, 과한 조치가 체제 특성상 가능했다. 당국은 도시 간의 이동을 통제했고 여행객이 묵을 수 있는 숙소를 몇 개만 남기고 닫아버렸으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 또한 닫았다. 일부 영업하는 식당이나 호텔도 이용 시간, 체온, 신분증 번호를 미리 적어야만 이용이 가능했다. 심지어 시민들의 체온을 불시에 측정해서 발열이 있으면 강제로 구류했다. 자신이 사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잡혀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중국 전역은 통제와 공포가 지배하는 유령 도시 같았다.


진짜 ‘봉쇄’ 조치가 이루어졌던 우한의 상황은 더 심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성공적인 방역이 이루어진 한국도 지역을 봉쇄하거나 민간 업체를 강제로 닫거나 사람들을 구류하지 않았다. 이미 전국 폐쇄회로(CC)TV의 안면 인식 기능으로 모든 국민의 행적을 조사할 수 있다고 암암리에 알려진 중국이라 가능했을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신뢰의 문제는 있지만, 외견상 팬데믹을 가장 먼저 털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행한 통제를 직접 경험했다면, 발표가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선진국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대체로 개개인의 자유가 민주적으로 보장되는 국가를 선진국이라고 불러 왔다. 하지만 특수한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창궐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전염성이 높았고, 치사율도 높았다. 어떤 과학자도 이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측할 수 없었다. 이 바이러스로 인해 개념과 가치가 충돌했고, 사회적인 통념이 흔들렸다. ‘국가’라는 철학적 개념에는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당연한 것이 있다. 이 가치는 정치적 스탠스가 어떻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일단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현재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나라는 대체로 동아시아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의 억제와 희생이 불가피했다. 시민 의식이 부족한 소수가 또 다른 발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에, 국민의 전반적 의식 수준과 국가의 통제 범위가 주요한 문제였다. 초반에 중국의 조치를 관망하면서도 다른 나라는 쉽게 그들을 따라 할 수 없었다. ‘큰 정부’에 익숙한 국가들이 그 방식을 먼저 좇아 방역에 성공했다. 이는 극명한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 미국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0만 명이 넘은 반면 중국이 발표한 사망자 수는 4600여 명이다. 인구 비례로 100배 정도의 차이다.


그렇다면 다시, 자국민의 생명을 지켰으니 중국은 좋은 국가인가? 여전히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어떤 국가가 ‘선진국’인지 서구권에서 먼저 의문이 나오고 있다. 질문의 기저는 국민을 잃어버린 자괴감에서 발단한다. 방역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가능하고,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큰 국가’가 유리하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한 동아시아가 국제 정세를 주도할 것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또한 코로나19의 종식은 지금으로서는 요원하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와 함께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개념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나라는 실제로 국민의 목숨을 효율적으로 지키는 나라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이 개념은 다시 회귀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다른 바이러스가 발발할지 모른다는 것도 학습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목소리는 소수 의견이 되고 말았다. 생명의 가치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진자 동선은 낱낱이 공개되었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쟁점이 방역에서 핵심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가 ‘선진국’으로 정의되는 날이 올 것인가. 근본적으로 그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하지만 많은 것을 교란시키는 바이러스 때문에 세계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바이러스의 종식은 요원하다. 패러다임은 결국 일부라도 수정될 것이다.

 




글·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