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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 야간근로에서 제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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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07-02



전공의 시절, 임신을 했다. 낮에는 병원 일을 하고, 밤에는 세미나 발표 준비를 할 때면, 뱃속의 아기는 쉬지 않고 발길질을 해댔다. 만삭에 연구용 설문지 더미를 들고 5층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조마조마했다. 출산 2주째 산욕열로 입원 치료 중 지도교수한테 “다음 주에 출근하지?”라는 말을 듣고, 이를 악물고 출근했다. 그때는 출산휴가가 1개월이었으나 요즘 여성 전공의는 법적인 출산 휴가 3개월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몇 년이 지나 우연히 간호사 후배를 만났는데 임신을 해서 제법 배가 불러 있었다. 누구누구도 아기를 낳았는데 조산이었다 하면서 “언니, 우리 간호사들한테 조산이나 저체중아 출산은 아주 흔한 문제예요. 야간근무 때는 정말 힘들어요” 하는 말을 들었다. 요즘은 임단협으로 임신 여성 야간근무 금지를 합의한 병원들이 많다. 2011년 야간작업 종사자의 건강관리에 관한 연구를 할 때 야간 교대근무는 자연유산, 조산 등을 유발할 수 있으니 사업장에서 이를 예방하고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건 “여성가족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2011~2012년에 참여했던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의 건강 연구 모임에서 직업병이 의심되는 여성 노동자들이 불규칙한 월경이나 자연유산 등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3년에 김명희 등이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하고, “반도체산업 여성 자연유산 위험, 1.8배 높다”라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또 한 반도체 회사의 산업보건 실태조사 데이터를 분석하여 특정 공정에서 자연유산 발생률이 높다는 논문도 나왔다. 그 구체적인 원인이 어떤 화학물질 때문인지, 중량물 취급 때문인지, 교대근무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들의 복합적인 결과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회사의 산업보건에 대해 조언했던 기간, CEO를 만날 때마다 임신 여성이 야간근무를 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꾸준히 냈다. 야간근무 중 배가 찢어질 듯이 아파서 공포에 휩싸인 채 앰뷸런스를 불렀던 그 회사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결국 그 회사에서 임신 여성 야간근무 금지정책이 실현되었다고 들었다. 경쟁사인 다른 반도체 회사는 그보다 조금 전부터 임신 여성을 야간근무에 투입하지 않는다고 전해 들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두 군데에서 불과 몇 년 전에야 이런 조치를 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감과 무거운 마음이 교차했다.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 노동자가 동의서를 쓰고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산재 승인보다 어려운 산재 신청

2014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게서 발생한 집단 자연유산이 산재로 인정되었다. 태아의 선천성 기형은 얼마 전에야 10년 만에 대법원 판결에 의해 산재 인정을 받았다. 산재 승인보다 산재 신청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2016년 생식독성 물질 취급 노동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인터뷰 대상을 찾는 게 정말 힘들었다. 아기가 아픈 것이 내가 직장을 다녔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 그 여성들에게 쏟아질 비난을 생각하면 차라리 조사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생식독성 물질은, 화학물질은 물론 야간근무나 장시간 서서 일하는 업무 등 작업환경도 포함된다. 사업주는 생식독성 물질과 관련해 근로자에게 적극적으로 교육하라. 임신 중인 여성을 야간근로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라.” 유감스럽게도 임신 여성 노동자의 건강보호는 ‘권고’의 대상일 뿐이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임신 여성 노동자와 아기를 보호하는 일은 어느 부처의 문제가 아니다. 전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글·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