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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야기

칼국수집과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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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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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살던 집 주변엔 맛집으로 소문난 아담한 칼국수집이 있었다. 매장이 협소하여 서너 개의 식탁이 전부였고, 식사시간이면 점포 밖으로 삼삼오오 기다리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급기야 어느 공중파 방송에 숨은 맛집으로 소개가 되었고, 덕분에 큰 인기를 얻어 이제는 한시간 전부터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언제였던가 간만에 인내심을 짜내어 칼국수 한 그릇을 사먹기로 작정을 하였다. 한참을 기다려 차려진 식탁 위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칼국수! 그런데, 왠지 이전의 그 맛이 아니다. 사실 큰 변화는 없는 듯 했지만, 면발은 손으로 뽑기에는 한계가 있어 기계로 뽑은 듯 했고, 정겹게 맞이하던 주인 아주머니의 웃음은 무심한 종업원의 얼굴로 바뀌었다. 다른 노포들처럼 예전의 아담한 칼국수집으로 계속 남았다면 구수한 손맛과 따스한 정감을 계속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쓰러움이 교차했다. 


손님이 너무 많아지면 칼국수집 맛이 바뀌듯이, 어떤 규모에는 적절한 한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은 행복해질까? 연구에 의하면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지수는 증가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오히려 행복감이 감소한다고 한다. 교실의 학생수가 적어지면 교육의 질은 높아질까? 학생수가 적어질 수록 선생님 당 학생수가 줄어드니 당연히 교육의 질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학생수가 일정수준 이하로 감소하게 되면 학생들의 다양성이 감소해서 오히려 교육 효과는 급감한다. 그렇다면, 병원의 경우는 어떨까? 큰 병원일수록 의료의 질은 높아질까? 의료는 인력, 시설, 규모에 비례해서 고난도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지는 면이 있다. 손에 꼽는 대형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도 높은 의료의 질을 기대하고 또 체감한다. 그러나 환자수가 계속 증가한다면 실제 경험하는 의료의 질이 과연 높게 유지가 될까? 소위 문케어 이후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서, 의료진들은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료하고, 치료하고, 상담하기에 한계점을 지났다고 한다. 


칼국수를 하루에 100그릇 만들어야 하는 주방장에게 칼국수 장인의 섬세한 손맛을 기대하기 어렵듯이, 맛있는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방장 한명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적정 요리 수가 정해져 있다. 칼국수와 의료를 비교 한다니 우습기도 하다. 그러나 고작 칼국수 한 그릇에도 밀가루를 반죽하고 숙성시키고 밀대로 밀어 국수 가닥을 내고 뜨끈한 국물에 삶아 내는 각 과정에 장인의 경험과 기술이 녹아있다. 그것이 맛집의 비결이다. 부인암 수술을 주로 하는 필자는 수술도 한 그릇의 칼국수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술을 하는 집도의는 그동안 갈고 닦은 의학 지식과 다양한 수술 경험과 숙련된 기술을 모두 집약하여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한다. 최선의 수술과 진료를 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만 항상 체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제는 의료 소비자가 현명한 판단을 해야하는 시기이다. 대형병원에만 가면 내 모든 병이 가장 잘 치료될 것 같지만, 혼잡한 환자들과 의료시스템에 묻혀 사람이 아닌 질병으로 대우받기 십상이다. 눈을 돌려보면 주변엔 나름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지역의 대학병원, 전문병원들이 많이 있다. 여성암을 잘 보는, 심혈관질환을 잘 보는, 척추질환을 잘 보는 등등 특성화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형병원을 무작정 찾아가기 보다, 칼국수면 이곳, 설렁탕이면 저곳, 전통 있는 오래된 노포처럼 빛나는 암 전문병원을 찾아보시라. 




글·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김윤환 교수